교회소개

성도들에게 드리는 시


나무십자가

남 능현


못 박히신 독생자를 온몸으로 받아내려 
갈려 섰던 나무는
보혈로 붉게 물들어 내심을 감추려 했다.
차라리 엉엉 울어버렸을 것을...
 
굵은 못 박히는 소리가
목 놓아 부르짖는 외마디 절규라 했다면
성자의 깨끗한 소멸에 위로가 되었을까?
 
그리스도의 눈은 빛을 잃고 숨어버렸고
나무는 바닥에 팽개쳐져
마지막 언어도 잊었다.
 
작은 바람에도 서럽고 추워 아파하던 나무들
앙상하게 부딪치던 가지들의 건조한 외침들은
절망이었나? 회개였나?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메마른 씨눈은 예수 부활에 놀라 촉촉하고
나무는 어쩔 줄 모르는 기쁨에 
다시 가지들을 들었다.
 
삭막한 영혼의 부대낌으로 
앙상하게 속을 드러낸 나뭇가지의
온 몸을 쪼개고 돋는 파릇한 새싹들은
그 역동하는 생명의 눈 빛 앞에
숨길 수 없이 솟아나온 환희
 
마침내 그 빛은 나무를 위해 생명의 길을 열었다.
성자를 달아매고 십자가로 버티어 서 있다가
통곡을 마음에 담고 버려져 죽어 있던 나무는
파란 색 생명으로 움터...
 
이제는 소멸되지 않는 숨소리로 외친다.
십자가여,
영원한 생명이여,
이웃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이여!

< 시작(時作) 후기 >


우리 반월제일교회(성도들)가 이 세상을 살기에 얼마나 착하며 애쓰며 지내시는지...

 

우리 성도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우리 모두가 다시 생각하고 눈물짓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이 - 그때에 예수님을 마무 십자가에 못 박았던 병정들과 그 때에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바로 ‘나’(우리)였음을 깨닫는다.


예수님을 매달았던 ‘나무 십자가’는 바로 ‘나’(우리)라고 비유했다.

그 의인을 매달고 당당하다는 듯이 서 있다가 성자께서 내려지시고 땅바닥에 버려져 나딩구르던 그 나무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그런데, 아론의 메마른 나무 막대기가 땅에 꽂히어 싹이 낫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장에 심겨져 다시 싹을 내었다. 우리는 파란색 숨을 쉰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나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스스로 낮아지고 가난해지셨던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 낮아지고 가난해지려 한다.

우리는 이웃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이다.